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도망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던 시기에 기억에 남았던 제목의 일본 드라마였다. 결국 제목만 스쳐 지나가고 드라마를 보진 못했지만 과연 도망치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될까? 에 대한 질문은 오랫동안—어쩌면 지금까지도—나를 따라다니며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도망치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도망쳐 나왔던 곳에 돌아갈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 거리감은 유지하되 눈앞의 낙원에 집중하는 것. 굉장히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균형이었다. 양쪽 중 무엇 하나 확실하게 하지 못하겠다면 일단은 붙잡고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생각해보면 나는 늘 작은 도망들을 반복해왔다. 회사 일이 버거울 때면 점심시간 공원으로 도망쳤고, 개인 작업이 막막할 때면 유튜브로 도망쳤다. 주말에 해야 할 일들이 부담스러울 때면 아예 하루 종일 침대로 도망쳤다. 그때마다 스스로를 나약하다고 자책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작은 도망들이 없었다면 진작에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도망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최근의 일이다. 영원히 등을 돌리는 도망이 있고,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한 도망이 있다. 전자는 정말로 부끄러운 것일 수 있지만, 후자는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다. 마라톤 선수가 중간중간 페이스를 조절하듯, 때로는 속도를 늦추고 뒤로 물러서는 것이 더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도망치는 동안에도 완전히 손을 놓을 수는 없다는 점은 고통이다. 회사 근처 공원으로 도망쳤을 때도 점심시간이 끝나면 다시 돌아가야 했고, 침대에서 하루를 보낸 다음 날에는 그래도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 '적당한 거리감'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완전히 등지지도, 완전히 매달리지도 않는 절묘한 균형점.
어쩌면 인생 자체가 이런 도망과 복귀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직장으로, 직장에서 집으로, 평일에서 주말로, 다시 주말에서 평일로. 우리는 끊임없이 어딘가로 도망치고, 또 어딘가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조금씩 지쳐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도망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언제 적절히 도망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무작정 버티는 것보다, 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진단서와 병원비로 배웠다.
결국 도망치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는 도망친 후에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저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도망이라면 부끄러운 일이 맞다. 하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 잠시 숨을 고르는 도망이라면, 그건 지혜로운 선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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